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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ein(현존재) 홍석태 글쓴이 : KEEC   2012-08-27 11:16

어두움 한 자락 덮고 사는 그는
그 어둠 때문에 심하게 괴로워하던 어느 날
그 어둠을 통하여
빛의 사람으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삶에 지쳐
시련의 아픔으로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그 아픔을 통하여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을 배웠습니다.

미움 하나를 품고 살아온 그는
미워하는 고뇌로 잠 못 이루던 어느 날
스스로를 용서하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자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랜 슬픔과 아픔과 고뇌(苦惱)의 무거운 짐을 내려 논
그의 빈 가슴에
영성의 풍성한 열매가 영그는
오늘을 살아가는 희망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냥 살아가는 맹목적인 생명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정유(定有)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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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기의 글은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에니어그램을 통하여 변화된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Dasein’은 : 하이데카의 철학에서 인용된 말로서 ‘현존재’라는 뜻을 지녔다.
정유(定有)의 존재는 : 오늘의 삶 자체를 자각(自覺) 하고 오늘의 존재의 의미(意味)와 이유(理由)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 하이데카는 이들에게 정유의 삶 또는 정유(定有)의 존재라고 말을 했다.
인간의 삶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오늘’을 말한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사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한 인간의 오늘의 삶은 영성(divine nature)으로의 접근이 아닌 매일을 그냥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오늘을 말한다.
칸트도 인간은 교육을 받아야하고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 하였고,
순자(荀子)도 인간을 악(惡)의 종자(種字-bad seed)로 보았지만 욕심을 버리고 수신(修身)하는 학습을 하면 덕(德)을 쌓고 인(仁)에 이른다 했습니다.

東洋人에게는 신(神)은 있었지만 하늘(天)과 땅(地)과 자연(自然) 그대로가 신(神)이었기 때문에 영성(靈性)을 쉬이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인에게는 God은 없습니다. 동양인의 견해로의 God은 서구인의 개념화에 의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동양인은 인간을 행동과학에 원리를 두었지만 西洋人은 종교나 초자아에, 즉 영성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견(見-see)은 그냥 보는 것을 말하고, 관찰하면서 보는 것은 간(看-look)이라 한다.
정유(正有)는 간(看-look)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에니어그램과 수비학(2) 진재열 글쓴이 : KEEC   2012-08-27 11:15

진재열의 에니어리더십 칼럼

에니어그램과 수비학(2)

진재열
한국에니어그램교육연구소 전임교수

한국에니어리더십연구소(RIKEL) 소장

에니어그램, 동기부여, 자기경영,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http://www.kenneagram.com/club/rikel

지난 호에서는 에니어그램과 수비학 개요와 에니어그램 도형안에 담긴 핵심 숫자인 1과 3과 7에 대하여 알아 보았고 이번에는 숫자 “1”부터 숫자 “10”의 의미하는 내용을 간략히 알아보고자 한다. 플라톤은 BC 387년에 ‘아카데미아’를 설립하고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을 써놓았다고 전해온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숫자에 담긴 상징적 의미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자.

1 : 전체성, 통일성, 완전성의 상징으로서의 ‘하나(Monad)', 태양, 자연, 탄생 등를 의미한다. 에니어그램 1유형의 모습 중 하나인 '완벽을 추구하는 모습'과도 상통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숫자 “1”은 원으로 표현되며 어원적으로도 ’안전하다‘는 뜻의 ’menein'과 ‘단일성(oneness)'이라는 뜻의 ’monas'이다. 1은 하나의 ‘수’라기 보다는 모든 수의 공통분모요, 모든 수의 기본이며, 모든 수 안에 들어있고, 모든 수를 수 되게 하는 독특한 수이다. 그리하여 1은 언제나 존재의 근원, 통일성, 전체성, 온전성, 충만성의 상징이었으며, 원이나 점으로 표현되었고 우주적 신성성을 지니게 되었다.

1이라는 숫자 개념 곧 ‘monad'는 상징수학적으로 3가지 원리를 나타내는데, 첫 번째로 창조적 확산의 원리이다. 원은 종교예술과 건축물의 축조물의 축조과정에서 언제나 빛, 공간, 시간, 힘이 모든 방향으로 펼쳐나가는 원리를 상징한다. 둘째원리는 원이 원주가 지니는 주기적 운동성, 규칙성, 리드미컬한 진동성의 상징이다. 이 둘째원리는 우주와 생명이 정지된 고요가 아닌 움직이고 창발하는 역동성으로 체험하게 된다. 불교나 힌두문화의 수레바퀴 상징은 그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세 번째 원리는 최대효율성의 원리인데, 원은 같은 길의 곡선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대 공간면적을 만들어 낸다.

아랍 알파벳에서 1은 신에게 해당하는 수이다. 이집트에서 1은 위대한 태양신으로 여겨졌다. 1은 보통 남성적인 수로 간주된다. 바빌로니아 인들은 1을 불행의 수로 여겼다. 1은 창조와 시작의 수이다. 또한 유일한 수로서 권위와 리더십을 상징한다.



2 : 긴장 갈등의 근원이면서 온갖 창조의 문(門)인 ‘디아드(Dyad)', 분리, 차이, 거리, 구별의 실제, 이원성, 균형, 차오르는 달, 타인에 대한 지각, 두 손과 두 눈의 힘을 상징한다. 한때 2라는 숫자는 이원성과 일이라는 통일체에 대한 거부로 여겨졌기 때문에 악의 기원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부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사제들을 축복을 내리는데 두 손가락을 사용하며, 일부 이집트 애뮬렛은 상,하로 나뉜 두 개의 이집트를 나타내기 위해 손가락 두 폭의 모양을 하는 경우도 있다. 2는 또 문화, 진리, 아름다움의 수이기도 하며, 우정과 사랑의 수이기도 하다.

디아드의 원리는 마이클 슈나이더는 ‘양극성(polarity)'으로 설명한다. 양극 사이의 긴장은 서로 반대되는 관계, 대조, 차의 형태로 모든 자연사와 인간사에서 일어난다. 디아드가 통일성으로 분리해 나가려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서로 반대되는 극들이 자신의 근본을 기억하고, 서로 결합해 원래의 통일 상태로 돌아가려고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사실은 디아드의 역설이다.



최근 숫자 “1”과 “2”를 활용한 의미있는 유모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 “사람(人)” : “1(사람)”과 “1(사람)”은 서로 균형되게 기대어야 조화롭다는 의미로서 어느 한쪽이 너무 많이 기대면 한쪽이 힘들어진다는 의미이다.

- “1+1=2” : 사람은 본디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 “다름”이 있으므로, “1(사람)”은 “1(사람)”과 “+(만나야)”만 “2(이해)”가 된다는 의미이다.

- “5-3=2” : 사람들은 살면서 “다름”때문에 “5(오해)”라는 갈등을 겪게된다. 따라서 “5(오해)”가 생기면 “3(3번 생각하거나, 참거나, 인내하면)”“2(이해)”가 된다.

- “2+2=4” : 이와 같이 “2(이해)”하고 “2(이해)”하면 “4(사랑)”하게 되고,

- “4+4=8” : “4(사랑)”하고 “4(사랑)”하면 “8(팔자)”도 고치게 되며,

- “5+5=10” : “5(오해)”를 두번만 하게 되어도 “10(완성, 완벽, 이룸)”된다.

여기서 숫자 “10”은 완성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손가락과 발가락이 10개 인것 처럼...

<계속>
폭탄주의 5대원칙과 통합의길 (송준석) 글쓴이 : KEEC   2012-08-27 11:14



KEEC 칼럼

폭탄주의 5대원칙과 통합의길




송준석



한국에니어그램교육연구소
7기 전문강사

전남도립대학 교수


막걸리 대학을 나온 필자가 비정상적이고 비정통적인 폭탄주를 논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폭탄주는 서민들에게 빨리 한 두잔에 취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조지훈 선생이 ‘주도유단(酒道有段)’의 글을 읽고 취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아야 주도에 입문하는 단계다라고 논한 대목에 의기 투합하여 필자는 술을 마셔댔고 술에 관한책도 많이 읽었다. 대표적인 것이 변영로 선생의 「명정40년」양주동 박사의 「문주반생기」였던 것 같다.

옛 선배들의 술에 관한 글에는 운치와 멋이 깃들어 있었고 이를 모방이라도 하려던 필자는 매일 술과 벗하고 술을 이기려 했으나 결국 간이 알코올에 절었다는 병원의 진단에 6개월 동안 금주를 하였다. 그 이후 예전 처럼은 아니지만 계속 술과벗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도 호기심에 섞어 먹었던 기억도 있지만 이는 전통적(?) 의미의 폭탄주는 아니고 폭탄주에는 반드시 싱거운(?) 맥주와 독주인 양주, 소주등이 섞어졌을 때 비로소 비율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불리어 졌던것 같다. 폭탄주의 유래는 동서양에 다 있어 다양하나 우리나라에서는 군대에서 충성주로 시작 되었다는 설,빨리 취하기를 원하는 가난한 언론인들의 술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등 다양하다. 어찌되었든 글의 목적이 폭탄주 원류를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기에 이제 전국민의 상용
음료(?)가 되어 버린 폭탄주의 현실적인 의미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특히 에니어그램에서 추구하는 통합으로의 길에 지금 여기의 입장에서 그 의미를 탐색해 보는 일은 일상생활을 축복과 선물로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하나의 단초가 될 것이다.

폭탄주의 5대원칙을 처음 들은 것은 경찰 고위간부였던 선배로부터였다. 듣는 재미도 있었지만 공무원 연수원에 강의를 자주 다녔던 필자가 공무원들의 의미와 가치있는 행복한 직장생활과 삶을 위해 재미있는 강의 주제로 선택하게 되었다. 폭탄주가 펼쳐지는 상황을 연상하며 나름대로 의미를 재구성해 보았다. 그 강의 효과는 너무나 좋았고 그것을 우리 에니어그램을 공부하여 건강하고 신성한 삶을 추구하는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다.

폭탄주의 제1원칙은 솔선수범이다. 폭탄주는 주(병)권을 잡은 제조자가 먼저 술을 마시게 되어있다. 그래야 술자리가 원활히 돌아가는 것이다. 제조자 본인은 먹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만 술을 먹게 한다면 어느 누구도 선뜻 그 자리를 유쾌하게 즐기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제조자의 뜻에 순순히 응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론 저나 많이 쳐먹지하고 욕할 것이다. 공자님 말씀에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으면 남에게 베풀지(시키지)말라는
뜻이다. 얼마나 무서운 지적인가! 본인은 하기 싫으면서 남에게 시키는 상관 지도자를 누가 따르겠는가! 유럽의 전통적 귀족들이 왜 존경받는가? 그들은 어려운 일이 발생하거나, 전쟁시에 항시 어려움을 앞장서서 겪고 이겨내고 극복했던 것이다. 이를 행동하는 양심이라 칭할 수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진정한 존경을 보내는 것이다. 8번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중에 하나는 솔선수범이다. 남을 움직이려면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러기에 9번의 중재자도 가슴 깊이 간직해야 할 계명이다. 이론과 논리로 따지고 주장하지
말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5번의 사색가도 통합의 길로 가기위해 간직해야 할 계명이다.

폭탄주의 제2원칙은 공평분배다. 공평분배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약한 술(맥주)과 독주(소주,양주)의 비율이 언제나 모든사람에게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가끔 나쁜 버릇이지만 제조자가 자기 먹기 위해 섞는 비율과 다른 사람에게 주기 위해 섞는 비율을 관찰할 때가 있다. 이 때 그 사람의 인간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제조자가 첫 술자리에서 상대방에게 주량을 묻지도 않고 만약 섞는 비율에 차이가 있다면 상대방을 무시,기만,지배하려는 심보가 자리잡고 있다고
보고 그사람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그렇지만 이것은 너무 단순한 계량적 의미의 평가일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평등을 원하지만 각기 다른 영역에서 서로 다른 특징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주량에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그것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공평한 분배가 있는 정의로운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필자도 한 때는 나의 원clr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편견하지 않고 공평무사(公平無私)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오였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원칙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칙을 내세우는 1번 개혁가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량이 적은 사람은 주량이 큰 사람에 비해 적은량의 술을 마시게 해야 한다.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 을 쓴 하버드大의 롤즈(J .Rawls) 교수가 이야기하는 평등론에서 기회균등, 허용적,보장적 결과적 평등의 의미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무원칙도 문제지만 약자를 배려하지 않은 원칙은 더욱이 더 문제이다. 3번 성취가들은 진정한 성취가 되기 위해서 성취의 진정한 의미를 이상적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폭탄주의 제3원칙은 질서유지다. 우리가 삶의 지혜를 얻는 신성한 에니어그램도 결국은 자연의 법칙에 합치한다. 태양이 왼쪽으로 돌다가 싫다고 오른쪽으로 돌지 않듯이 모든 법칙에는 질서가 있다. 밤 낮이 그렇고 춘하추동을 비롯하여 동식물의 성장멸(成長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러한 질서가 유지되지 않고 무질서의 혼돈이 계속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모두는 헷갈릴 것이다. 술이 한순배 두순배 돌때 질서없이 움직이면 서로가 헷갈려 그 술자리가 엉망이 될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계통과 질서를 무시하고 일을 처리하면 이세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약육강식의 무질서가 지배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왜 이 사회에 조직이 생겨났겠는가! 관료제의 직책, 직위, 장유유서의 질서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질서 속에서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6번 충성가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고 7번의 낙천가가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질서와 그 약속의 의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폭탄주의 제4원칙은 인수인계 철저이다. 폭탄주의 주(병)권을 가진 제조자는 언제나 다른사람에게 주(병)권을 넘겨 줄 준비를 해야하고 그럴 각오를 해야 즐거운 술자리가 될 수 있다. 제조의 즐거움을 자기자신만 즐기려고 하면 그 술자리에 끝은 물보듯 뻔하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맡은 직책과 직위에 따른 명예와 권력은 영원한 것이 못된다. 그러기에 항시 후임자나 후배를 위해 내어주는 미덕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시대나 세대가 끝났으면 역사적 진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축적한 지식 삶의 지혜 및 올바른 통치 철학등을 다음 세대를 위해 친절히 내어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건전한 2번 조력가는 당연히 갖추고 있을 것이며 3번의 성취가와 8번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공통의 덕목인 것이다.

폭탄주의 제5의 법칙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이다. 필자는 9번유형이여서 인지는 몰라도 제5법칙을 제일 중요시 여긴다. 같이 시작한 술자리는 더불어 같이 즐겁게 끝나야 하는 것이다. 고통은 나누면 덜어지고 즐거움은 나누면 더해진다고 했듯이 우리가 조직의 구성원으로 잘 살아간다는 것은 어렵고 힘들때 서로를 도와주고 즐거울때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유형의 우리의 동료들이 존재한다. 우리 에니어그램만 하더라도 9개 유형의 각기
다른 동료들의 서로 다른 신성하고 건강한 생각들로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의 아픔과 두려움을 쓰다듬으며 행복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인 것이다. 실존적 차원에서 지금 여기에서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자신의 고귀한 정신으로 서로를 도우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동고동락의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통합의 길은 바로 동고동락의 대동(大同)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폭탄주의 5대법칙으로 억지 이야기를 만들어 읽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비웃음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상생활에서의 술자리에서도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한 단면을 여러분께 들려주고 싶어 과욕을 부려 보았다. 여러분께 이글이 조그만 이야기 거리라도 되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에니어그램을 통해 건강한 성장을 하고자 하는 여러분과 행복한 인생 여정을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