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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표류기 - 글 / 소희정 전임교수 글쓴이 : KEEC   2015-11-19 14:56

김씨표류기

2009


글 소희정 전임교수




도심을 바로 앞에 두고 섬에 홀로 갇힌 남자 김씨

가족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의 방에 갇혀 있는 여자 김씨.
남자 김씨는 여자의 바깥세상에 있고 여자 김씨는 남자의 바깥세상에 있다.
이들이 속해 있는 세상과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정 반대이지만 이 둘에게 바깥세상은
두려우면서도 나가고 싶은 곳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죽고 싶었던 남자 김씨 |

살고 싶다는 욕망에 무릎을 꿇고, 모래사장에 쓴 HELP가 HELLO로 바뀌게 된다. 무인도에서 홀로 야생의 삶을 살아가도 괜찮다고 느낄 무렵에 익명의 쪽지가 담긴 와인 병을 발견하고
그의 삶은 알 수 없는 희망으로 설레기 시작한다.


컴퓨터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여자 김씨 |
다른 사람들의 미니홈피에서 가져 온 사진이 마치 자신인 듯 사이버 세상에 올려놓고 댓글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세상에 낯선 모습이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이라 확신한 그에게 리플을 달아주기로 하고 3년 만에 자신의 방을 벗어나 야밤에 한강 밤섬에 와인 병을 던져주게 되는데 가상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여자 김씨의 삶은 일종의 가짜의 삶 즉, 살아있지만 죽어 있는 삶이라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이렇게 한 평 방에 갇혀 있는 외톨이를 히키코모리라 할 수 있는데 도시에서 고립된 주인공 남자 김씨와 히키코모리인 여자 김씨는 소통 부재의 상태에 빠진 소외된 현대인들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였던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는 타고난 것이고, 욕구의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5단계로 나뉜다고 하였다. 1단계 생리적 욕구, 2단계 안전에 대한 욕구, 3단계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4단계 자기존중의 욕구,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영화 속 주인공 남자 김씨는 무인도에 불시착하자 인간의 욕구인 가장 1단계인 먹고 마시는 생존 욕구, 즉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1차 욕구가 어렵게 충족이 되고 나니 오리 배라는 자신만의 집을 갖게 되고, 3단계의 욕구인 소속과 사랑받고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소통 욕구까지 느끼게 되며 빈 오뚜기라고 적힌 깡통과 허수아비로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옥수수를 따고 반죽을 해서 드디어 짜장면을 만들어 먹는 것을 통해 자아실현의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김씨 표류기>와 아주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캐스트 어웨이>가 있다. 주인공 톰 행크스는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불시착하여 4년을 홀로 지내게 되는데 이런 <로빈슨 크루소>류의 영화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피하고 싶은 것도 인간의 로망이고, 다시 사람들 속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것 역시 인간의 로망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주인공 영화 속 김씨처럼 처음에는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지만, 이것이 해결되자 배구공에 자신의 피로 얼굴을 만든 다음 윌슨이란 이름의 친구를 삼고 혼자서라도 스스로에게 소통을 하려고 한다. 아마 영화 김씨표류기가 아주 보편적인 인간을 상징하는 ‘김씨’라는 성을 쓴 것도 이러한 보편적인 인간의 동기와 그 위계, 그리고 그 위계를 통해 진화하는 인간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같다.
남자 김씨가 붉은 사루비아 꽃을 맛보고 눈물을 흘렸을 때처럼 여자 김씨는 어느 집 담벼락 가로등불 아래 하얗게 피어있는 정체 모를 아름다운 붉은 꽃나무에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처음으로 엄마에게 말을 걸고, 인스턴트 옥수수 캔에 진짜 옥수수 씨앗을 심자 여자 김씨의세상이던 가상의 세계도 점차 진짜로 바뀌게 되고, 인스턴트 그린 자이언트 옥수수가 진짜 옥수수가 되고, 오뚜기 깡통 허수아비, 가짜 오리 같은 두 사람은 진짜 오뚜기처럼 진짜 백조처럼 다시 일어서게 된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은 호기심이 있다는 것이고 무엇인가 궁금해 질문한다는 것은 들숨과 날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도심 속 외계인과도 같았던 두 김씨는 어쩌면 우리네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을 블랙유머로 감싸 안은 것처럼 보인다. 김씨 표류기속 실날같은 타인과의 소통이야 말로. 지금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삶의 양식이 아닌가 여겨진다.

살아있다는 것은
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
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
-문정희의 ‘살아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기
이 세상에서 단 한명과 소통이 가능하다면 누구와 소통을 하고 싶나요?
여자 김씨가 유일하게 창문을 여는 건 1년에 단 두 번, 세상이 멈추는 민방위 훈련 날인데, 내가 만약 여자 김씨라면 단 두 번 여는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싶나요?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혼자 있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위플래쉬 Whiplash - 글 / 소희정 전임교수 글쓴이 : KEEC   2015-10-15 09:40




영화 위플래쉬

Whiplash , 2014



 

글 소희정 전임교수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나 무대에서 연주를 할 때, 노래를 부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책을 읽거나 운동경기를 할 때 등 몰입 상태에 빠져들면 주변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잘 인식하지 못하고 시간의 흐름마저 놓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단어는 몰입이었다.

몰입(沒入, flow)은 고도의 집중을 유지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충분히 즐기는상태를 뜻하는데 몰아일체(沒我一節)무아경과도 같은 개념이며 몰입을 통해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자신감이 생기며 행복도 얻을 수 있다고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말했듯이 끊임없이 자기 극기에 의해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메시지를 던져준다.

 

너희가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보고 싶었어.
루이 암스트롱이나 찰리파커 같은 뮤지션이 나오기를 말이야.
하지만 너희 중에 제2의 찰리 파커는 없어.
찰리파커가 존스가 던진 심벌즈에 맞지 않았다면 심벌즈를 던지는 대신 ‘Good job!’이라고 말해주었다면 버드는 세상에 없었겠지.
생각만 해도 그건 비극이야.
영화 속 플렛처 선생의 교육방식이다.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이 안 되고 자신이 세워둔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소리를 지르는 것도 모자라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심지어 뺨을 때리기도 하는 등 함께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주변 사람을 얼어버리게 만드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은 플렛처 선생님

 

플렛처 선생님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친구도 없고 마음에 드는 여자 친구와의 만남조차 최고의 연주자로 인정받고자하는 욕망이 앞선 나머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관계를 단절하자는 이별을 통보하는 앤드류라는 학생이 있다.

 

영화 안에서 연주되는 재즈곡의 제목이자 오프닝에서부터 복선을 암시하는 곡인 위플래쉬채찍질이라는 뜻에서 볼 수 있듯이 채찍질만이 천재의 경지에 오르는 과정이다. 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광기어린 연주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히 압도적인 전율을 선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위플래쉬이지만 학생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모욕과 학대를 서슴지 않는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과연 그래야만 하는가? 라고 되돌려주고 싶은 영화이다. 플렛처 선생님의 교육적 가치관, 감정을 드러내는 태도, 학생들과 소통하는 방법 등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오로지 드럼에만 몰두하면서 손가락이 찢어지고 터지고 피가 흐르는데도 불구하고 연습에 연습을 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가에 대해서는 반기를 들고 싶다.

 

영화 위플래쉬가 말하고자 하는 교육’, ‘인간애’, ‘몰입’, ‘욕망’, ‘카타르시스등 괴물과도 같은 폭군선생이 나오는 영화라고 치부하기엔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영화 속 속살 들여다보기

* 위플래쉬

영화의 제목인 '위플래쉬(Whiplash)'는 채찍질이란 뜻이다.
영화 속에서 연주하는 곡 또한 '위플래쉬'인데 원곡은 행크 레비가 만들었고, 그가 이끌던 행크 레비 레거시 밴드(The Hank Levy Legacy Band)가 연주했다.

 

* Damien Chazelle감독
1985년 출생.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재즈음악을 하면서 드럼을 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위플래쉬>.

 

* J. K. Simmons
플렛처 선생을 맡았던 J. K. Simmons 아버지는 몬태나 대학교(University of Montana) 음악 스쿨의 감독이었으며, J. K. Simmons도 몬태나 대학교 음대를 졸업했다.

 

* Miles Teller

앤드류 역의 Miles Teller15살 때부터 드럼을 연주했던 것을 계기로 피 나는 노력을 하여 영화 속에서의 드럼 장면은 거의 직접 연주를 하였다.

 

* 더블 타임 스윙

Double Time Swing, 더블 타임 즉 2배로 하라는 뜻으로, 2배속 연주이다. 영화 속에서는 400bpm 속도를 플렛처 선생이 얘기하는데, 이 말은 1분에 400번을 치라는 이야기다. (bpm=beats per minuste) 일정한 템포를 유지하면서 30초나 2-3분을 하라는 게 아니라 일정한 템포를 유지해야하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 글 / 전임교수 소희정 글쓴이 : KEEC   2015-10-15 09:35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실스마리아


글 소희정 전임교수


자연의 순리,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돌려도 바람 한 점, 유유히흐르는 구름조차 막을 도리는 없 듯 우리네 나이 들어감 또한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을 실제와 허구 사이를 교차하며보여주는 영화이다.


‘발렌틴’
어린 나이임에도 사람의 내면을 바라보는 힘과 통찰력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여자 ‘발렌틴’ 과거 ‘말로야 스네이크’에 그대로 머물고 싶어 하는 ‘마리아’에게 잔인하고 다른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시그리드’보다는 인간미가 넘치는 ‘헬레나’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조언도 아낌없이 해줄 뿐만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나간다. 이 둘은 강에서 스스럼없이 수영을 하고, 대본 연습을 하는 모습에서는 친밀한 사이로만 보이지만 남자를 만나러가는 발렌틴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계단을 뛰어올라가거나 데이트를 마치고 잠이 든 발렌틴을 훔쳐보는 건 ‘감정적 전이’ 또는 ‘전이 사랑’ 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리아’
젊은 여배우에게 자신의 역할을 빼앗기고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년의 톱 여배우인 ‘마리아’ 그녀는 과거 20년 전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 에서 상사였던 ‘헬레나’를 유혹해 자살로 몰고 가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연기를 통해 큰 인기를 얻게 되는데 다시 리메이크 되는 과정에서는 과거의 ‘마리아’가 아닌 ‘시그리드’의 유혹에 넘어가는 나이 든 상사 ‘헬레나’역(헬레나 역을 연기했던 수잔은 자살을 함)을 맡게 되지만 영원히 시그리드로 남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극중 ‘헬레나’는 ‘마리아’ 자신일지 모른다. 연기자로서 여전히 정상에 있어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젊음과 아름다움이 무색해지고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갈등하는 모습은 삶을 살아가는 여정 곳곳에서 녹아있기에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마주해야하는 고통에 몸부림이 아닌가싶다.
숨을 딱 멎게 하는 [말로야 스네이크]이며 영화 제목인 [실스마리아의 구름]에서 구름은 은유적 장치인데, 이 거대한 구름덩어리가 뱀의 형상을 띠고 있다고 해서 스네이크라고 불리는데 독일철학자 ‘니체’의 말을 인용하면 그 광활하고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으려는 결연한 인간의 의지를 쏟아내는 것 같다고 하였다.

또한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장면은 발렌틴이 구름인지 안개인지 모르는 자욱한 도로를 폭주하듯 운전을 하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차를 멈추고 구토를 하는데 심리적으로 바라본다면 구토는 어떤 것에 대한 역겨움, 극도의
강한 거부를 나타내고 인물과 실제 간의 미묘한 혼돈을 영화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오리무중 같은 미로 속을 빠져나오는 발렌틴의 모습에서 역할들에게 귀속되지 않으려는 안간힘 같은 것 처럼 말이다.
영화 말미에 ‘죠엔’에게 자신의 의견대로 해주길 바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왜 그래야하죠?”라는 시크한 대답을 듣고 ‘마리아’는 멍한 상태로 얼버무리는 모습이 있다. 어쩌면 ‘마리아’는 자신이 ‘헬레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 동안 겪은 경험들에 대한 통찰을 하지 않았나 싶다.
질투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운 것이고 시기는 타인이 소유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고, 경쟁은 자신이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마음의 적과 싸우는 감정이라고 했듯이 ‘마리아’는 연극을 하기로 하면서 이 감정들과 직면하지 않을까 싶다.

질투와 시기가 감정적 공황상태를 불러일으키고 난폭성과 편집증을 띄게 되면어려운 상황이 도래하겠지만 이러한 감정들은 인간이 갖는 자연스러운 감정들이 아닌가 싶다.

질투나 시기의 감정은 꽤 강렬한 감정이다. 영화 내내 발렌틴에게 분통을 터트리고 결정을 번복하려고도 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있었지만 자신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 인정하고 싶지 않는 모습에 직면하며 맞서 통찰이 이루어진 모습이 꽤 성숙한 인간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데 있다.



생각해보기
▶ 영화 속에 등장한 인물 중에서 누구와 가장 동일시 되었고 가장 여운이 남는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요?
▶ 만약 영화감독이 되어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스토리의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
▶ 당신이 평소에 자주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며 전혀 보여주지 않는 감정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