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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공 글쓴이 : KEEC   2020-10-24 15:21
창공
          윤동주

그 여름날
열정의 포플러는
오려는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 그늘 좁다란 지점에서
         
천막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은 이끌고
남방으로 도망하고
높다랗게 창공은 한 폭으로
가지 위에 퍼지고
둥근달과 기러기를 불러왔다.
           
푸드른 어린 마음이 이상에 타고
그의 동경의 날 가을에
조락의 눈물을 비웃다

고추밭 글쓴이 : KEEC   2020-09-25 16:08
고추밭
윤동주

시들은 잎새 속에서
고 빨―간 살을 드러내 놓고,
고추는 방년된 아가씬 양
땍볕에 자꾸 익어간다。

할머니는 바구니를 들고
밭머리에서 어정거리고
손가락 너어는 아이는
할머니 뒤만 따른다。



9월이 오면 글쓴이 : KEEC   2020-08-24 17:34
9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