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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난1 (blame1)
  • 작성일 : 2008-11-29
  • 작성자 : 사랑학 연구소
  • 조회수 : 2625
작성일 2008-11-29 작성자 사랑학 연구소
조회수 2625 첨부파일
비난1 blame1 바다 속에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듯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수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수많은 생각들이 그것이다. 생각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 대상과 마주쳤을 때 떠오르는 생각, 두 번째, 해결해야 할 일이나 고민이 있을 때 하는 생각, 세 번째, 구름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생각 등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첫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과 접하게 되면 거의 습관적으로 그 대상에 대해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아름다운 여자의 가슴을 보고 성적인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고, 돈이 없어서 갖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할 때, 그 물건을 훔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가 죽이고 싶도록 미울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과 접했을 때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나(에고)’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때문에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잘 관조하여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라. 또 우리의 마음속에는 대상이 없을 때도 수많은 생각들이 떠돌아다닌다. 욕망과 관계되는 것도 있고, 우리의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도 있다. 그럴 때도 자신의 마음속을 잘 관조하라.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기회로 삼으라.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일일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금언 중의 금언이다. 자신을 이해해야 남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것은 남도 하기 싫어하고,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남들도 하고 싶어한다. 여러분이 친구의 이사를 도와줬는데, 별다른 대접을 못 받아서 매우 섭섭했다면, 여러분이 이사를 갈 때는 당시의 여러분의 마음을 미루어 이사를 도와준 친구들에게 아주 기분 좋게 대접을 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좋은데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들에 대해 자기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자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자라오면서 받아들인 수많은 도덕관념이나, 관습이나 종교적 교리 같은 것을 잣대로 삼아 그 잣대에 어긋나는 생각을 하면 거기에 대해 비난하거나 자책하거나 억압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모를 보고도 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그런 생각은 나쁜 것이야!’ 하고 비난하거나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자신 속에 ‘성적 욕망이 자리 잡고 있구나!’ 하고 이해만 하면 된다. 사실 바다 속에는 수많은 사물들과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바다는 그 어떤 것도 비난하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다 합쳐서 바다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흘러 다닌다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 결코 어떤 판단도, 어떤 비난도 하지 말라. 그냥 그 모든 생각을 자신의 친한 친구처럼 받아들이고 이해하라. 그것이 바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는 사람들한테 말하기를, 남을 비난하거나 심판하거나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마구 비난하고 심판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을 비난하고 심판하는 사람들이 남에게도 그렇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경험의 집합체인 ‘나(에고)’는 우리 마음속에서 거의 독재자 노릇을 하고 있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신을 비난하고 심판하고 있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나’에서 비롯된 생각을 ‘나’가 다시 비난하고 심판하고 있으니, 결국 자신이 자신을 비난하고 심판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자아(에고)와 초자아(슈퍼에고 : 선악을 판단하고 양심의 기능을 영위하는 부분)로 나누어 말하고 있지만, 결국 그 둘은 같은 것이다. 언어상으로는 나눌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나’에 지나지 않는다. 언뜻 보면 자기 자신이 발전하고 개선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자신의 부모를 보고 성적 욕망을 느꼈다고 하자. 그럴 때 더 높은 데 있는 ‘나(슈퍼에고)’가 낮은 데 있는 ‘나(에고)’를 심판한다. ‘그런 생각은 나빠!’ 그러면서 여러분은 죄책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러면 자신은 매우 도덕적인 사람으로 변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잠시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어 들어갔을 뿐이다. 언제든 그 욕망은 다시 일어날 기회를 노린다. 그 생각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여러분은 더욱 그 생각에 얽매인다. 그것은 결코 발전이나 개선이 아니다. 그 마음의 장난에 놀아나지 말라! ‘나’의 독을 피하려면 ‘나’가 자신을 비난하려고 할 때, 그 즉시 그것을 관조하여 자각하라. 그러면 감정으로까지 진전되지 않고 그 즉시 멈춰 버린다. 뱀이 물려고 할 때, 그 즉시 뱀의 목을 비틀면 뱀의 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듯이.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 생각(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본질인 ‘생명(순수의식)’이 주인이 되어 자신의 그런 ‘욕망이나 생각(나)’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 - 비열함, 어리석음, 질투심, 수치심, 바보 같음, 무책임함, 의리 없음, 탐욕스러움, 폭력성, 덤벙댐, 용기 없음, 우유부단함, 열등감 - 들이 전부 사랑(자비, 연민)으로 변형된다. 파도가 곧 바다이듯, 에고의 부정적인 요소들조차도 그 근본은 생명(사랑)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다. 사랑만이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여러분 마음속의 ‘나(에고)’는 비난하지만, 여러분의 ‘생명(사랑)’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 - <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