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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난2 (blame2)
  • 작성일 : 2008-12-28
  • 작성자 : 사랑학 연구소
  • 조회수 : 2412
작성일 2008-12-28 작성자 사랑학 연구소
조회수 2412 첨부파일
비난2 (blame2) 패션 디자이너인 그녀는 한 성공한 남자와 사귀게 되었다. 그 남자는 매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사업이 잘돼 하루아침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는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매우 게을렀다.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그를 매우 존경했다. 그러나 그의 게으름을 알고 나서는 그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녀가 서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만 화를 버럭 내버렸다. “어떻게 매일 그렇게 빈둥거릴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난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 내 돈이 내 대신 일을 해주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 말에 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그와 헤어졌다. 사실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빈둥거리고 싶은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 누군가가 자신을 돌봐 주면 좋겠다는 생각, 그저 재미있게 놀고 싶은 생각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비난하면서 억눌러 버렸다. 그런데 그 남자가 나타나서 그녀 자신이 비난하고 있었던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자 그녀는 화가 났던 것이다. 그것은 사실 그녀 마음 안의 게으름에 대한 분노였다. 그녀는 상대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동료 직원은 사람들이 대낮에 누워서 낮잠 자는 사람들을 보면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들은 왜 밤도 아닌 대낮에 저렇게 누워서 낮잠을 자는지 모르겠어!’ 그는 누워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것은 거의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비난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알았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그는 생활에 있어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의 하나는 이렇다. ‘나는 낮에는 절대로 눕지 않는다!’ 그래서 그 자신이 만약 낮잠을 누워서 자는 일이 있을 경우에 그 스스로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때문에 남들에 대해서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친구의 애인은 남자와 여자가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매우 불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을 비난했다. “짐승들같이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고아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주변의 남자들로부터 성적인 학대를 받아왔다. 때문에 그녀 스스로 자신이 남자와 함께 자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못했다. 그런 태도가 남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났던 것이다. 내 친구는 남들이 모여서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을 보면 늘 이렇게 비난했다. “한심한 사람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아까운 인생을 비디오 보는 데 소비하고 있다니!” 그는 평소에 자신이 비디오를 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도 그 스스로, 비디오를 보는 건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제하곤 했다. 어쩌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너무나 재미있어서 비디오를 보게 된 경우에는 다 보고 나서 자신에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이, 아까운 시간 낭비했네. 보지 말았어야 하는데. 난 왜 이러지?” 그는 그런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다. 우리가 남들을 용납하지 못하거나 비난하게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용납하지 못하거나 비난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살아오면서 만든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남자의 경우는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원칙에서, 고아였던 그녀의 경우는 자신의 과거의 경험에서, 패션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자신의 엄격한 생활 원칙에서 연유되었다. 그것이 곧 ‘나(에고)’이다. 그 ‘나’가 비난의 주범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비난은 우리의 정신적인 성장이나 행복에 결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에 대한 비난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타인에 대한 비난은 타인을 미워하게 한다. 나아가 그런 비난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본질인 생명(사랑, 조화, 자유, 진리)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비난에는 동정도 사랑도 없다. 대상에 대한 미움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비난을 하는 당사자는 비난당하는 대상보다 우위에 서기 때문에 항상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나(에고)’가 자신을 유지해 가는 미묘한 방법이다. 자신도 모르는 그런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쩌다가 남으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면 정말이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자신 속의 ‘나’에 자신이 도리어 고통을 받는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자업자득이지 뭐!” 그래서 우리는 남들을 비난하게 될 때 자신의 마음속을 빨리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이 그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에게도 똑같은 비난을 하는지. 아마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고정관념이나 과거의 경험, 곧 ‘나’ 때문이다. 그것을 빨리 자각하고 그로 인한 장애로부터 즉시 탈출하라! ‘나’라는 구름이 사라진 곳에 우리의 본질인 ‘생명’은 맑은 가을 하늘처럼 그냥 그 자리에 원래부터 덩그러니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곧 사랑이다. - <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