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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육원에서
  • 작성일 : 2013-05-26
  • 작성자 : 장병길
  • 조회수 : 767
작성일 2013-05-26 작성자 장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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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에서 - 김기택(1957~ ) 내가 웃으며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처음 보는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다 팔 벌리자마자 갑자기 아이 앞에 나타나는 허공 어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허공 내 품에 안기자마자, 철컥 아이는 자석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아이 뒤에는 다른 아이들이 있다 어린 눈마다 뚫려 있는 거대한 허공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 김기택 시의 빛나는 지점은 통찰력에 있다. 그는 시적 대상이 되는 사물과 풍경들의 심부(深部)를 혹은 이면(裏面)을 에두르지 않고 꿰뚫어 본다. 그리고 그 중심을 향해 가로질러 들어간다. 불편을 무릅쓰고 무례하고 집요한 관찰과 묘사로 낯선 의미와 이미지를 건져 올린다. 보육원에서 처음 보는 아이에게서 시인은 허기진 그늘을 본다. 아이가 처음 보는 타인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자마자 나타나는, 어서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커다란 빈자리를 시인은 허공이라고 부른다. 허공은 아이가 안기자마자 자석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갈망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의 손길과 사랑을 기다리는 굶주림이다. 그 아이 뒤에는 더 많은 다른 아이들이 있고 그 어린 눈마다 채워지기를 갈구하는 거대한 허공이 뚫려 있다. 어디 보육원뿐일까. 사람의 유전자엔 누구에게나 허기진 그늘이 있고 우리 사회 곳곳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산재해 있다. 작은 손길만 내밀어도 철컥 하고 달라붙어 이내 채워질 혹은 떨어지지 않을 빈자리, 그늘, 허기진 허공이 당신은 보이는가?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