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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자
  • 작성일 : 2013-05-28
  • 작성자 : 장병길
  • 조회수 : 771
작성일 2013-05-28 작성자 장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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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 이정록(1964~ )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 놓는 거여 *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평범한 어머니의 말에서 심오한 의자론이 나온다. 이 말은 아름답고 귀한 꽃도 열매도 그 밑을 받쳐주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라는 연륜이 밴 인생론적인 전언으로 나아간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큰아들인 시인이 좋은 의자였단다. 채소밭의 참외와 호박도 식구인데 무언가 받쳐줄 의자를 내줘야겠단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것이 복잡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 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란다. 때론 어른이 구술하는 말을 받아 적기만 해도 이렇게 훌륭한 시가 된다. 아마도 그 삶이, 마음이 시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