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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 함께 홀로
  • 작성일 : 2013-07-10
  • 작성자 : 장병길
  • 조회수 : 905
작성일 2013-07-10 작성자 장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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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의 일부 지하철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이 눈길을 끈다. 승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으면 하는 배려를 담아 재밌게 구성했다고 한다. 여러 문구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게 하나 있다. ‘스마트폰에 발이 달려서 잠깐 한눈파는 사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까 승하차 시에는 스마트폰이 아닌 자신의 발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지하철을 타고 내리다 승강장과 출입문 사이에 발이 빠지는 사고를 경계하는 내용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하철을 타면 앉거나 서거나 온통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자신 앞에 누가 서 있는지, 노인인지, 장애인인지 관심 밖이다. 이런 광경은 지하철을 내려서도 이어진다. 인파 속에서 계단을 유달리 천천히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십중팔구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동영상을 보고, 카톡을 보내느라 뒷사람들 불편은 안중에 없다. 이런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느낌이다. 그럴 때면 메사추세츠공대(MIT)의 사회심리학자인 셰리 터클 교수가 쓴 ‘외로워지는 사람들(Alone together)’을 떠올린다. 영어 제목을 문구대로 해석하면 ‘다함께 홀로’다. 함께 모여 있지만 제각각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에 빠져 있어 사실상은 모두 따로따로인 상황을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다함께 홀로’는 심심찮게 목격된다. 식당, 카페만 잠시 들러도 확인 가능하다. 심지어 연인들의 데이트 장면도 예외가 아니다. 대화 없이 각자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인터넷에 접속하기 바쁘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홀로 스마트폰과 무언의 대화를 하는 이들도 제법 많다. 언제 어디서든 함께 있으나 따로따로인 상황에 익숙해진다. 또 문자메시지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많이 쓸수록 전화 통화나 직접 대화를 꺼린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다 보면 필연적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하는 대화가 서툴러진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간혹 발생하는 세대 간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젊은 층의 서툰 대화법을 꼽는 전문가들도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스마트폰 집착이 주변과 사람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기본적인 도덕, 규범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지난달 광주에서 발생해 화제가 된 이른바 ‘구 시청 파이트녀’ 동영상 사건이 그 예다. 도로 한복판에서 남녀가 싸움을 벌이는데도 말리는 이가 거의 없었다. 대신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올려야겠다.”며 스마트폰으로 싸움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찍은 동영상 중 하나가 인터넷에 올랐다. 그런데 싸움을 말리는 게 우선일까, 동영상 촬영이 먼저일까? 기본적 도리보다 페이스북이 먼저 떠오른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안내방송처럼 스마트폰 대신 자신의 발을 한번 보자. 주위도 찬찬히 둘러보자. 그리고 주위와 사람에 관심을 갖자. 그게 ‘다함께 홀로’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벗어나는 길일 것 같다. - 중앙일보, 강갑생 JTBC 사회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