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 한 벌이 있을 뿐이다.
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
비좁은 임대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굽은 등
투박한 손을 들키는 사람이다.
그는 그 거대한 손으로만 말을 할 줄 알았다.
언젠가 그가 소중하게 내민 손 안에는
산새 둥지에서 막 꺼내온 헐벗은 새끼 새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새근대고 있었다.
푸른 숨을 쉬고 있었다.
어두움의 음습한 숲에서
홀로 빛나던 새는 지금 어느 하늘을 꿰뚫고 있을까
그의 손에 이끌리어 가 보았던 하늘
구름 바람 태양 투명한 새.
그는 그런 것밖에 보여줄 줄 모르던 사람이다.
그의 내민 손안의 시간
그의 손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으려는가.
그는 손으로 말했지만
우리는 진짜 그를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내민 손에 있지 않았다.
어깨 너머에 있었다.
닳아빠진 양복을 입고 선술집에 앉아
그는 술잔을 앞에 둔 채 어깨 너머에서 묵묵했다.
그 초라한 어깨 너머로 보고 싶은데
차마 볼 수 없는, 엄두가 나지 않는
그는 어깨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이다.
― 장이지(1976~ )
* 시가 승자에게 건넬 말은 별로 없다. 찬란한 승리에는 삶에서 연민을 도려내고마는 무자비한 칼날이 숨어 있다. 시는 월계관을 쓴 광장 한복판의 동상을 닮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 시는 연약함과 남루함, 투박함과 비루함에서 양분을 취해오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에게서 순결한 정신을 길어 올린다. 사칭(詐稱)이나 기만(欺瞞)을 통해서는 획득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설령 삶에서 낙오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다. 시인은 삶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온 사람만이 삶을 사랑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