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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단계 소감문 - 12기 윤운재
  • 작성일 : 2015-05-19
  • 작성자 : 윤운재
  • 조회수 : 1114
작성일 2015-05-19 작성자 윤운재
조회수 1114 첨부파일
시간 참 유수 같다. 참 빠르게 흘러가는데 되돌릴도 수 없는 흐르는 물 같다. 거칠게 내 몸과 마음을 훑어낸 사흘은 어느덧 지나간 일이 되었다. 긴 꿈이었던 듯 아득한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꿈처럼 잊힐까 두렵기도 하다. 그 자리에 함께한 얼굴들 그 마주침이 지나가고, 지금 혼자 앉아 있다. 꿈같은 시간에서 얼마만큼 더 왔을까 되돌아보며 쓴다. 태풍이라도 불면 비와 바람에 영향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 경험도 어느덧 지나간 시간이 되었지만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앉아있어도 서 있어도 누워있어도 걷고있어도 먹고 있어도 생각나고 되뇌게 되고, 아주 거칠게 꿈마저도 꾼다. 스스로 인식한 것 이상으로 정말 강렬한 경험이었나 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온통 후회뿐이다. 그곳을 그렇게 떠나온 그때부터 눈 뜨고 있는 동안에도 또 눈 감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 생각들은 온몸 가득 후회만 만들어낼 뿐이다. 기본유형을 찾지 못하고 혹 유형에 확신이 없는 상태가 계속되어 한해 두 해 해를 더해갈수록 그것은 점점 짜증마저 일으켰다. 또 시작 단계부터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 참여하지 못한 경험의 반복은 좌절감마저 들게 했다. 그래서인지 몇 번이고 신청과 취소를 반복했었다. 이제 지나고 나서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마치 프로이트의 로마여행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 유대인이어서 당한 부당한 대우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부친의 모습에 실망하고선, 강인한 한니발을 동경하고 또 동일시했던 프로이트는 어쩐 일인지 로마로 갈 수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동일시했던 한니발 바르카는 피레네 산맥을 넘고 무려 코끼리를 이끌고 겨울의 알프스 산맥을 넘어 북이탈리아로 진공했던, 서양 전쟁사에 손꼽히는 전략가였다. 이후 프로이트 자신의 그러한 모습, 상태를 깨닫고 나서야 로마로 여행할 수 있었다는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랬다. 프로이트가 동일시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도 결국 로마에 입성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무려 프로이트의 경우와 비교해가면서, 도대체 무엇이 걸려 가까운 거리인 온양에 가는 것이 그리도 힘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프로이트가 한니발에의 동일시를 깨닫고 나서 로마로 갈 수 있었다고 했는데, 나도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아직 그 이유도 모르겠고 어떤 앎의 경험도 하지 못했지만, 결국 온양에 두 번, 일 주일여의 시간을 다녀올 수 있었다. 그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변화나 앎이 있어 간 것이 아니라면 반대로, 갔기에 변화나 앎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여기고 있다. 이제 사흘간의 시간과 경험을 다시 떠올려 본다. 처음 자리에 들어서는 그때부터 마치고 나오는 그때까지 정말 생생히 흘러간다. 집에서 나서서 교육장소까지 가는 동안, 추쿵추쿵 기차, 역, 교육시간까지 여유로워 들렸던 교육장 옆 시장, 장날이 아니었던가 시간이 일러서인가 한산하다. 이제 교육장 입구, 낯익다. 계단으로 올라가니 3층엔 역시 낯익은 장소와 광경이다. 한 달 전에 봐서 익숙하다. 선생님들도 낯익다. 인사를 하고 뒷자리로 잡고, 점점 선생님들이 도착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행이 시작된다. 같이 여행하는 선생님들 교수님들 도와주시는 선생님들 떠오른다. 속한 유형 선생님들과는 제법 격하게 이야기를 한다. 주어진 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식사 시간에도. 그때 참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했었던 것 같다. 첫날 여행을 지난다. 방을 같이 쓸 동침인이 한 분 안 오셔서 방이 바뀐다. 괜찮다. 첫날은 그 방에서 잠들지 않는다. 자정이 넘도록 속한 유형 선생님들과의 모임으로 이야기를 정리한다. 아, 이유는 다르지만,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고마운 선생님이 떠오른다. 바뀐 방에 짐을 내려놓고 씻고, 그 날 여행을 회상하며 동침인 선생님과 함께 다시 3층으로. 이제 나의 벗, 나의 사랑, 나의 영혼, 나의 신을 만나러 간다. 내 몸은 내 영혼과 하나가 된다. 그리고 둘째 날. 바쁘다. 여행 전, 속한 유형 선생님들과의 모임이 있다. 서둘러 전날 하나 되지 못한 영혼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올라선다. 흐음... 잠든 듯 몰입해 명상으로 다시 여행을 시작한다. 비밀친구께서 보내신 선물 수령차 나서려니 부끄럽다. 누구신지 조금 짐작하고 있다. 필체를 보고 확인한다. 그리고 확신한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살짝 긴장된다. 점심때 한 번 더 이야기를 맞춘다. 순서는 온다. 여기저기 사진기가 조금 걱정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깊숙한 저 안쪽에서부터 천한 것을 끌어올려 본다. 미처 다 씻기지 않은 영혼의 찌꺼기가 있었던지 제법 진하게 올라온다. 이제 나의 신성을 끌어올려 본다. 에이 이건 어쩐지 좀 가볍다. 아이고, 우리 지도자 선생님께서 하나를 건너뛰신다. 뭐 어쩔 수 없다. 시간이 부족하다. 끝난다. 오만함도 겸손함도 아니지만 자신을 스스로 보지 못하니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다만 제법 잘 빙의한 듯하다. 이제 장소를 옮긴다. 다른 선생님들께선 기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긴장한 시간이다. 아, 몸을 예쁘게 신나게 움직이는 건 정말정말 힘들다. 그래도 초반부에 해치워서 기분은 산뜻하다. 옆 탁자의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더 개운하다. 와, 만찬장에 함께 앉은, 여행장소에서도 앞뒤로 앉은 멋진 선생님 덕분에 우승 상품도 받았다. 이런 행운도 있다. 뱀 인사를 한다. 아 놀라운 광경이다. 정말 놀라운 광경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경건하게 나의 벗, 나의 사랑, 나의 영혼, 나의 신을 만나러 간다. 아, 몸속 가득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이 느낌, 영혼이 신성이 인사하는 듯한 이 느낌. 그렇게 방 안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쓸 수 없어 아쉽지만 마주한 선생님들의 성함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정말 고마운 경험이다. 정말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영혼을 가다듬고 신을 만나는 동안에도 흰 천 덮인 원탁에는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이 계신다. 이제 내 사랑과 함께 몸을 누이러 가던 길, 그 새벽까지 계속된다. 동침인이 속한 유형 선생님들이다. 셋째 날. 여행은 막바지다.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정말 뒤늦게야 불붙는 부류다. 이제 좀 뭔가 되는 것 같은데, 이제 좀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서야... 후회만 하는 그야말로 삶 자체가 뒷북이다. 이제 정말 예정된 여행의 일정은 끝나간다. 촛불을 앞에 두고 둥글게 모여 앉으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무리라도 좀 멋지게 나스럽게 하자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으로 칭찬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우리 회장님께서 서 계신다. 아, 우리 회장님 정말 멋지다. 이제 깊이 숨 한번 내쉰다. 후우... 뜻깊은 여행이었다. 이제 일정이 있는 여행은 끝이 났고 일정 없는 삶 속에 내던져진 진짜 여행길에 접어든다. 조금 걱정이 된다. 그리고 조금 기대도 된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사흘의 시간 동안에 가장 특별하게 다가온 장면은 당연 이틀째 밤의 일이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둥글게 둘러선 백 명이 넘는 그 많은 사람이 마치 한몸이 된 듯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나아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놀라웠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어 삼킨다는 뱀 우로보로스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뱀의 척추뼈 한 마디를 맡은 듯 그 안엔 내 몸도 있었다. 사람에게 정말 몸은 중요하다. 철학적 질문은 제하더라도 분명,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아플 때 제 몸을 문지른다. 팔에 다리에 충격을 받아 아프면 내 손으로 내 팔을 다리를 문지른다. 내 마음이 아플 때 고통스러울 때 내 팔로 내 몸을 감싸 안는다. 그때, 내가 내 몸을 내 팔과 손으로 문지를 때 감싸 안을 때, 맞닿은 내 몸과 내 팔과 손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같은 몸 같은 공간을 함께 나누고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풀어지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사랑은 손을 혹은 입술을 혹은 몸을 마주하고 접점을 나누면서 이루어지는데, 살아온 날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때에, 살면서 내 몸에 닿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기억나지 않는 어릴 적의 부모와의 만남, 접점이 있었을까. 그러나 기억이 나는 그 언제부터 내 몸에 닿았던 것은 내 손 이외에, 혹 옷이었고 혹 수건이었고 예외적으로 나무나 철봉이 있었을까... 그러나 그것들은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결코 온도를 유지하지 않았다. 내 몸에 와 닿은 것이 일정한 온도를 가져 유지하는, 그렇게 체온을 가져 살아 있는 사람이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더구나 서로 몸의 상당한 부분을 마주 대하고 공유하며 체온을 전하는 경험을 한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그것이 한 사람 두 사람이 아닌 백여 명의 사람과 함께였다는 것은 너무나도 놀랍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특별했던 경험이 저 뱀 모양의 끌어안음이었다면, 가장 격렬하게 느꼈던 감정은 바로 후회다. 이제 후회하는 것들을 정리해 볼 필요가 생겼다. 후회는 언제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사흘의 시간도 예외가 아니다. 다시 또,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좀 더 손을 들어 발표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좀 더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건네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비밀친구에게도, 짝찌에게도, 좀 더, 이분께, 저분께, 이것을, 저것을, 이렇게, 저렇게, 할 걸, 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을까, 왜. 후회된다. 늘 그래 왔듯이. 한 것도, 하지 않은 것도, 모두 후회된다. 그것은 만족스러운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다운 모습이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했을까.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왜 하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왜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되풀이된다. 너무나 후회된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글을 써서 보낼 용기를 내게 되었다. 내야 했다. 그것은 적어도 2년 치 용기다. 그것을 하면 또다시 후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아도, 또다시 후회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글을 읽어서 알고 있다. 무엇보다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 않은 것은 정말 잊히지 않는다. 정말 후회가 끊이질 않는다. 이미 지난 동안 강산이 변할 세월 그 쇠털같이 많은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후회할 일뿐이다. 아마 아니 분명히, 평생 그 세월을 후회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 사흘의 시간은, 삶에 주어진 시간을 덧없이 흘려보내 버린 나를 후회하게 만드는 촉매가 되었다. 이것이 감정적 사고적 변화로서 내 삶의 변화로서 가장 큰 부분이다. 내 삶에 대한 나의 방기는 너무 오래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무책임했고 무신경했고 무자비했다. 이제 나는 삶의 길 위에 내던져져 뭐라도 해야 하게 되었다. 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해야 했던 일들을 이젠 해야 한다. 내가 해야 했던 일들과 해야 하는 일을 나는 이제 해야 한다. 이것부터다. 늦게라도. 그러지 않으면 그 안전하고, 지지하고 지지받는 시간을 공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길과 그러한 안전하고 지지하고 지지받는 시간과 공간을 만나는 경험을 함께한 선생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할 길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젠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고 싶다. 이제 에니어그램의 여행을 마치고 난 후 일상생활에 몇 가지 변화를 새겨본다. 사랑이든 여행이든 삶에 있어 변화의 계기가 된다. 하나는 그야말로 중독되어 그 여부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과 모습, 현상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다시 보고자 한 것이고, 그 중독된 상태에 빠져 관성을 따라 벗어나기를 거부하던 그 거부감조차 느끼지 못했던 본능적 욕구를 정제하여 더 나은 사고 더 나은 감정 더 나은 행동 더 나은 삶을 향해 가볼 뜻을 세운 것이다. 비밀친구께 받은 선물은 그러한 뜻을 북돋우고 몸을 움직이게끔 독려한다. 다른 하나는 내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심신의 불건강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다시 약을 쓰고 치료를 받기로 했다. 또 하나는 소소하지만 분명한 변화다. 그것은 문학을 문예작품들을 읽고자 다짐하고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꽤 많은 글을 읽어왔지만, 이상하게 문학을 읽어내지 못했다. 삶의 경험 그 경험 속에서의 느낌, 생각, 감정, 의지 등을 정제하고 가공하여 담은 것이 시 소설 희곡 수필 등의 문학이라는 예술일 텐데 그간 접한 문학작품은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읽은 것이 그야말로 대부분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만큼 문학작품을 읽는 것이 힘들었다. 그야말로 내면의 빈곤함 때문일지도 혹 경험의 부족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읽기가 힘들 것이다. 그리고 정말 힘들다. 그러나 이 행위는 단순히 읽는 글의 갈래를 달리한 것에 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것은 나를 다시 여행에 길 위에 서는 간접경험을 제공하고 뜻을 세우고, 나아가 일상에서 내 몸으로 직접경험할 감각을 부여하고 뜻을 펼쳐낼 용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분명한 예감이 든다. 시작은 몇 번을 읽고자 폈다가 다시 접기를 반복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으로 정했다. 결정의 이유는 서문이다. 서문은 정말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그러나 본문은 몇 장 넘기기 힘들었던 이야기다. 또 다른 이유로는 가르치고 배우는 여행의 주요 의제인 줄탁이 생각나서다. 여기서 아브락사스가 떠올랐다. 한 세계인 알에서 나오려는 새의 투쟁이 그 파괴 행위가, 그렇게 향해 날아가는 신 아브락사스가 궁금하다. 그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있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다만 기존의 세계에서 나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그 모습은 비슷하게 느껴진다. 이제 그 차이를 한번 경험해 보려고 한다. 역시 쉽지는 않다. 그래도 한 줄 한 줄 그 느낌을 생각을 감정을 의지를 경험을 떠올리며 읽고 있다. 앞서서 무려 프로이트의 여행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를 빗대었다. 이제 나의 여행을 생각할 시간이다. 많은 명사가 드는 추천하는 행위로 여행을 들곤 한다. 많은 사람은 시간이 나면 여유가 있으면 하고 싶은 목록에 여행을 들곤 한다. 여행, 길 위에 서는 그 행위를 왜 많은 사람은 권하고 또 원하는 것일까. 에니어그램 단계 단계 과정 과정은 또 여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또한 왜 그러할까. 여행을 떠나보지 않은, 길 위에 서본 경험이 없어서였을까, 나는 그것을 좀처럼 공감하기 힘들었다. ‘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신화와 설화 구비문학을 연구한 권위자께서 쓴 이 책은 그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그랬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대개 길을 떠났다. 그리고 길 위에 서 있었다. 우리 신화 속 바리데기가 또 가믄장애기가 그랬고, 알게 모르게 많이 삼키고 뱉었던 북유럽신화의 오딘이 또 로키가 그랬고, 그리스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 이아손 오이디푸스 등 유명한 영웅들도 그랬다. 그들은 모두 길을 떠났고 그 길 위에 서 있었다. 길을 떠나 그 길 위에 서는 경험, 여행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곳에서 그것으로 무엇을 얻고자 함이었을까 라는 점은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인은 개인의 삶에서 주인공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개인은 사람은 모두 길을 떠나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뜻일 것이다. 모두 여행길에 오른 여행자라는 뜻일 것이다. 에니어그램의 단계에 여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마치고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지고 감정이 희석될 즈음이 되어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그것이 무엇이었던가 어렴풋이 알 듯 또 느껴질 듯하다. 주인공이기에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 서는 경험을 하는 것은 반대로,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 서는 경험을 함으로써 스스로 삶의 주인공일 수 있게 하는, 주인으로서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그런 흐릿한 앎이다. 이제 내 인생에 길을 떠나고 그 길 위에 섰을 때 나는 그것을 조금 더 선명히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을 내 글로써 내 말로써 분명히 전달하고 표현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