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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형에니어그램 심화단계 소감문(2015.08.14~16)- 고명진
  • 작성일 : 2015-09-24
  • 작성자 : 고명진
  • 조회수 : 711
작성일 2015-09-24 작성자 고명진
조회수 711 첨부파일
저는 일에서 성과를 내고 경제적인 이득을 누리며 집에서는 어려운 가족들을 대신하여 주거를 마련해 주고 생활비나 병원비를 도와주면서 사회적으로는 고마워서 각종 후원도 하고 20년을 별 무리없이 주변에 칭찬을 받으면서 살아 왔습니다. 처음 입사를 할 때는 아이들이 조금더 여유있기를 바라면서 용돈이나 벌자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위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만 언제인가부터 칭찬에 가려 소중한 가치를 잊고 있었습니다. 이제와 정리를 해 보면 1유형이 갖고 있는 특성 중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바라보다 ’ 시기를 놓치고 분열로 가게된 ’ 전형적인 케이스였다는 것입니다. 평소 고객들에게나 임원들에게 인정받는 건강한 2,3수준이었고 지기싫어하는 점까지 있어 남에 이목에 대상이 되었습니다. 항상 어려운 점포로 배정을 받아 최선을 다했고 저와 함께 했던 분들은 대부분 임원으로 영전되어 갔습니다. 솔직히 나에 성과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주변에 다른 조직이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고, 성과뒤에는 경쟁으로 인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거나 그 이상에 무모함이 병행 되기도 했기에 점점 피곤을 겪던 중이었습니다. 임원들은 항상 미래를 얘기하였고 그때마다 저는 갈등하였으며 저를 아끼는 또 다른 임원은 그 사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조언도 하여 주었지만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 임원이나 지점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 ‘내 자리’ 등 미래라는 꾐에 소속한 조직에 더 강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상황들이 5-6수준 정도까지 낮아진 것입니다. 병에 진단이 되어 회사를 그만 두고 난 뒤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느끼고 저에 어리석음을 이해하게 된 것은 나에 성장을 위해서는 휴식도 취하고 교육을 통해 내 발전을 이어가게하는 것이 건강한 미래 발전을 지속하는 자양분임을 익히 아는 임원들이 자신들에 이득을 위해 그 사항을 모른채하고 저에 충성심을 이용했었다는 것입니다. 1형은 누구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법을 어기고 속이는 것은 더욱 싫어합니다. 회사를 그만두는 같은 시기에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저는 다른 부분에서 논리적이고 현명하였고 남다른 직감도 있어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2유형인 날개에 영향을 받아 남에 어려움을 보고 넘기지 못하고 자칫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어 마음에 갈등이 저를 힘들게 하는 경향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 당시도 가족과 친구에 어려운 처지를 모른채 하지 못하였습니다. 주고싶지 않았지만 결국 돈이 갔고 오빠와 친구가 제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더 기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분개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미 써버리고 없는 돈과 원칙을 어기고 준 나에 행동을 자책하면서 잊기로 하였습니다. 용서할 마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심을 저버리고 기만행위는 멈출줄을 몰랐고 사과하지 않는 그들을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법적으로 도덕적으로 응징하게 되었습니다. 처벌이 가까워지자 저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그들에게 다시한 번 예전에 나처럼 이해해주라고 동조하는 다른 식구들 또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건강이 좀 허락이 되고 잊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두 가지 일은 가끔씩 순식간에 저를 괴롭혔습니다. 이 교육을 준비하면서 책을 읽을 때 까지는 명확하지 않았던 저에 이해할 수 없는 ‘사랑’에 근원이 부모기원에서 비롯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친이 제가 4살 때 일본으로 밀항하셨고 아버님을 따라가겠다는 어머니를 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 저였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고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서 부정적인 얘기하고 경제적 부담을 해 주지않는 다는 얘기를 하며 그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저희들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보다 더 어린 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더 복종하며 어머니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았고 시댁(친가)도 일부러 가지 않는 등에 행동등이 어머니에게까지 버려질까 두려워했던것 같습니다. 저는 큰일을 겪는 30년 가까이 가족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특히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수용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어려운 일을 겪는 그 시점에 오빠에게 사기를 당하게 된 계기도 모친에 부탁을 어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건강이 최악인 상황에서 경제적인 모든 것을 잃고 보니 늘 책임져 주던 저에게는 가족이 남보다 못하고 누구에게도 나를 보이고 싶지 않고 믿을 수 없다는 의심병이 생겼습니다. 심화단계를 준비하는 과정 및 과정안에서 나에 대한 유형에 여러 가지 현상이 나 자신을 억압하고 분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두고 모든 현상에 대해 즐기고 공부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사회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새삶에 영양분을 얻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