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면서 몇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고 한다. 나와 에니어그램의 만남은 지인의 손에 이끌려, 내가 사는 곳도 아닌 광주까지 가서 하게 된 1.2.3단계 통합 프로그램이었다. 1단계, 2단계, 3단계를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과의 씨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분노까지 많은 혼란이 있었다. 왜 내가 다른 이의 참견과 조언 등을 불편해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던 다른 이의 생각과 행동들, 바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늘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갖고 있는 지, 즐거움에 대한 추구를 하지 않는 지, 일에 대한 전화만 걸려오고 놀자고 하는 사람이 없는 지, 왜 내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야 하는 지, 왜 습관처럼 책을 사고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는 지 등 50세가 되도록 습관처럼 해왔던 내 행동에 대한 이해가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엮여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호기심...그 뒷 단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렇게 나에게 통찰을 주었는데(이때는 모든 것을 다 안 것 같은 마음이었음) 다음단계에서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강한 의문이 일면서 나 자신의 집착을 놓지 못했다는 것을 느껴가면서 5단계까지 하게 되었다. 에니어그램을 만나고 나는 많이 변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항상 바라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른 이를 바라보는 눈이 부드러워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두 아이에 대한 집착과 아집을 버림으로써 관계가 회복되었고,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남편의 모든 행동과 말에 대한 이해가 쓰나미처럼 밀려와서 결혼 후 마음 속에만 담고 있던 갈등과 분노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완벽한 모습을 지향했던 내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농담과 웃음을 날리는 친근한 이웃, 친구가 되었다. 5단계 후, 완벽을 기하는 나에게서 해방되었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지 않고 자격증을 받지 않았다. 매년 1~2회, 본인이 소속된 기관에서 에니어그램에 대한 검사 및 강의를 해주면서도 누군가 나의 전문성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9번 날개의 영향이라고 게을러진(완벽하지 않은)자신을 합리화하곤 했었다. 지금 외부적인 필요에 의해서 자격증 단계를 밟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그것도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