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을 처음 만났을 때, 누군가 내가 인생을 이렇게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위로가 되었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었던 성격이 내가 아니었다. 내 안에 꽁꽁 숨어 자신을 포장하려 애썼던 진짜 나와 마주했다. ‘그랬구나. 네가 그토록 사랑받고 싶어서 애쓰고 있었구나.’라고 제 3자가 되어 나를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순간 변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1년 동안은 더이상 습관적으로 행하던 나의 행동과 감정선택을 거부했다. 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서, 나의 감정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나는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단계 에니어그램 연수를 들을 때쯤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이제 더이상 남에게 매여있지 않아서 자유롭게 느껴지지만, 원래 내가 가졌던 누군가를 사랑하고 돕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공허함을 느꼈다. 그간에 내가 남을 향해 쓰던 에너지만큼 내가 나에게만 에너지를 써야지라고 또다른 강박 혹은 보상심리에 매여있던 것 같다.
2단계 에니어그램 연수를 들으며 나의 상태가 오히려 통합을 가장한 분열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나의 내면세계에 한 층 더 깊게 들어가게 되었다. 알아차리는 순간 또 변화가 시작되었다. 무언가를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매여있던 ‘~해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드디어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났다. 당위를 벗어던진 나는 여전히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다시 만나게 된 나의 모습이 참 반갑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나의 어떤 한 모습을 혐오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본성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오자, 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더욱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의 말과 행동, 감정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빛나고 있을 그 안에 진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눈이 생겼다.
그렇게 또 1년이 흘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바뀌어 어쩌면 내 인생 가장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나의 의식을 만난 한 해였다. 내가 지금 많이 힘든 상황임을 알았지만, 의식적으로 통합방향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한 해를 보내고 2021년 에니어그램 3단계 연수를 우연한 기회로 신청하게 되었다. 이미 내가 에니어그램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3단계 연수에서는 본능동기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내가 왜 그토록 작년 한 해가 힘들었는지 어떤 강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본능 동기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나에 대해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내가 매여있었던 또 다른 강박을 알아차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를 가두고 있었던 방의 문을 하나씩 열어갈 때마다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고, 그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에니어그램은 호기심의 대상이고, 어쩌면 영영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를 나의 모습을 이끌어내어준 고마운 존재이다. 나를 이해하는 만큼 상대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에니어그램이라는 학문을 더욱 연구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 지혜로 조금이나마 내가 살고있는 이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