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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양재오) 글쓴이 : KEEC   2012-08-27 11:30

1.

'이 여자가 사는 법'이니, '저 남자가 사는 법'이니,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이 말을 들을 때, 어떤(!) 상념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말들이 지닌 느낌(語感), 함의(含意)가 참 재미있다. 그래, 그 말들이 표방하는 초점은 결국 이 남자든 저 여자는 사는 법이나 방식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유발시킨다. 산다는 것?

사는 법이라? 사는 법이란 말을 들을 때, 당신의 머리 속은 무슨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나요? 물건 잘 사는 법. 예, 그것도 중요하지요. 잘 쓰는 것이 곧 잘 버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애써서 번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른대서야. 그것, 아니 될 말씀이지요. 그런데, 가진 돈이 아까워서 일전 한 푼 쓰기 싫은 사람은, 아예, 안 사는 법을 터득해도 좋을 듯싶군요. 그러면, 돈이 좀 모이려나!

그러나 단 한번의 인생을 어떻게 잘 꾸려갈까, 하고 고민 좀, 하는 분이라면, 역시 잘 사는 법을 외면하거나 소홀히 할 수 없겠지요! 예전에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몇 차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요, 잘 사는 법은 세 가지가 있다고. 그것이 무얼까, 궁금하시죠?

그것은 바로 '三快'라고도 하는 快食, 快便, 快眠. 시체말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랍니다. 원문의 맛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그 본래의 뜻이 좀 더 잘 드러나도록 구태여 말을 좀 바꾸어 볼 것 같으면, 그것은 바로, 즐겁게 먹고, 남김없이 시원하게 싸고, 잠자리까지 잡스런 생각 끌어들이지 않고 잠을 깊이 푹 자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건강하게 잘 살게 된답니다.

아하. 그런데, 세상 일이 뭐가 그리도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나 원 참! 많은 일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 문제 해결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많은 인재 양성하고, 이 문제 관련해서 세계 곳곳에 많은 연구 기관과 인력이 생기고, 이것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물량이 소요되고 또, 시장이 형성되는 것, 아닙니까? 결국 이 문제와 씨름하면서 한 사회가 굴러가는 것 같아요! 이 세 가지 만 잘 운영해 나가면, 길지 않은 일생에 많은 짐을 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들이 기초적 신진대사와 관련된 이 세 가지 기본기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해서, 스스로 고생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에게 부담 주는 일이 왕왕 일어나지요.

쾌식, 쾌변, 쾌면에서 '快'는 바로 '愉快','快感'의 '快'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서 다시 바꾸어 표현해보면, 잘 사는 법, 곧,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비결은 유쾌하게 식사하고, 개운하게 배설하고,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삶의 이 기본을 잘 갖추고 운영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이들은 이 삶의 기본리듬(律動)을 잘 지키지 못하여 고생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삶의 현실입니다. 당신은 하루하루 유쾌하게 사십니까? 아무쪼록 늘 유쾌하고 신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2.

좀 미안하긴 합니다만, 이 문제 관련하여 정치 문제 한번 끌어들이면, 아마 괜찮던 속이 괜히 메슥거리고 구토가 날 것 같은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그 신물 나는 정치 이야기냐고 타박할지도 모르겠구요. 왜, 지난 번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과 응원단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신바람을 일으켰지요. 그 때문에 살맛을 되찾은 사람도 많이 생긴 것 같구요! 그런데, 그 정치, 라는 놈은 신바람을 넣어주기는커녕, 여전히 구토증을 유발시키고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정치가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고 깊은 시름을 안겨줄 정도가 되면, 왜 革命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기존의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하여 정치 지형/지도를 바꾸어/뒤집어 놓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역사를 통하여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그 규모와 성격은 다양합니다만. 革命이 아니면, 改革이라도. 사람들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지혜를 발휘하여 스스로 '잘 사는 법'을 터득하여 신나게 살 수 있는 토양을 스스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변질된 정치라는 놈이, 그것도 사람들(국민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저마다 들고는, 익명의 다수인 국민의 이름을 제 멋대로 팔아서 소박한 시민들의 일상의 삶의 기본 틀을 마구 뒤 흔들어 놓는 데서야, 그게, 어디 될 법한 일이겠습니까?

어찌하여 저절로 잘 되어가고, 또 잘 되어갈 수 있는 것을 내버려두지는 못할지언정, 괜히 도와준답시고, 그리고 그 돕는 방식이 절대로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 양 강요하며, 내 삶의 지형을 자꾸 뒤흔들고 엉클어 놓으려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치 내 사이즈에 맞지 않은 옷을 들고 와서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수선을 떨며, 아, 이 옷이 정말 당신에게 딱 어울려요, 정말 좋아요, 하며 자꾸 내 품에 안기는 꼴이지요. 그것은 또 혹시 저는 좋을 런지 몰라도 내 입에 전혀 맞지 않는 음식을, 맛있다고 수선을 피우며, 억지로 내 입어 떠 넣으려는 꼴은 아닌가, 싶습니다.

스스로 건강히 잘 살수 있는 '三快'의 비법(!)을 스스로 터득한 사람들 한 가운데, 어느 날 괜히 군더더기처럼 나타나서 그 무얼 도와주겠다며, 평온한 내 삶의 리듬을 깨어놓고 근심거리를 한 보따리 풀어놓는 정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구토증까지 유발시키는 정치는 언제 그 본연의 처지로 돌아가서, 이 민초들의 근심걱정 좀 덜어내 주려나! 스스로 힘들여 마련한 소박한 밥상이지만, 즐거운 화제로 즐겁게 식사하고, 또 때에 따라 뒷일 개운하게 치른 그 상쾌함 속에서, 눈만 붙이면 아무런 근심 잡념 없이 꿈나라로 직행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삶의 리듬을 더 이상 깨뜨리지 말아주시길.
CEO는 ‘아침형 인간’ (정남구) 글쓴이 : KEEC   2012-08-27 11:30



CEO는 ‘아침형 인간’






상의, 최고경영자 200명 조사
필요 덕목 “결단력” 43% 꼽아

국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대체로 ‘아침형 인간’이며, ‘성실하고 정직한 부하직원’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존경하는 최고경영자로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을 꼽았다.

22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 200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를 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고경영자들은 59.2%가 “오전 5~6시 사이에 일어난다”고 대답했다. 6~7시 사이에 일어나는 사람은 29.2%였고, 5시 이전에 일어나는 사람도 8.3%나 됐다.

선호하는 부하직원 유형에 대해서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꼽은 경우가 65%로, ‘업무처리가 뛰어난 사람’(32.5%)보다 더 많았다. ‘지시에 잘 따르는 사람’을 선택한 최고경영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최고경영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묻는 질문에는 ‘결단력’(43.3%)을 가장 많이 들었고, 이어 ‘성실성’(22.5%), ‘도전정신’(17.5%), ‘친화력’(10.8%), ‘카리스마’(1.7%) 차례였다.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는 ‘내성적’(35.9%)이라는 대답이 ‘외향적’(19.1%)이란 대답보다 많았으며, ‘중간적’이라는 대답이 45%로 가장 많았다.

가장 존경하는 최고경영자로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24.2%), 고 이병철 삼성 회장(21.7%), 이건희 삼성 회장(9.2%), 고 유일한 유한그룹 창업자(5.8%) 차례로 대답했다.

한편, 자신의 회사가 순식간에 위기를 맞아 경영난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10%가 ‘매우 그렇다’, 70%가 ‘그렇다’고 대답해, 경영자로서 긴장이 적지 않음을 내보였다. 그럼에도 자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직업으로 기업가(48.3%)를 가장 많이 들어, 최고경영자들은 자신의 직업에도 자긍심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가 다음으로는 교수·교사(13.3%), 과학자(10.8%), 의사(7.5%), 언론·방송인(4.2%) 차례였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웃는 얼굴 (양재오) 글쓴이 : KEEC   2012-08-27 11:29

웃는 얼굴

어제 저녁에 찰리와 함께 몇 번 들른 적이 있는 와잇플레인즈(White Plains)의 보더즈(www.borders.com) 서점에 들러서 시간을 죽이다가, 결국 수피 심리학 관련 서적 한권과 함께 틱낱한(Thich Nhat Hanh) 의 강연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BEING PEACE 를 들고 나왔다.

지난 밤에 곧바로 잠도 오지 않고해서, 틱낱한의 것을 한 시간 여 읽다가 잠이 들었다. 그의 글 첫마디는 삶이 고통으로 채워져있다는 수행자(불교승려) 로서의 기본 통찰을 전제하면서도, 그 삶은 또한 경이로움으로 가득채워져있다는 현상도 적시한다. 그러면서 평화 운동가로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은 바로 나 자신의 작은 미소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평화는 그 작은 미소의 경이로움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듯이. 좀 늦은 잠자리였지만, 평온하게 잠들수 있었다.

아침마다 한 방 건너에 있는 작은 채플에서 빅터(Victor Marshall)와 함께 미사에 참여하곤 하는데, 오늘 아침에 들은 것은 마태오(마태) 복음서에 나오는 한 부분이었다.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하여 아흔아홉 마리를 놔두고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섰다가, 기어코 찾아낸 뒤, 그 찾았을 때의 기쁨을 전해주는 이야기. 그리고 그에 앞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듣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서로 나누기를 하였다. 특히 어린이와 그들의 천진난만, 그리고 티 없이 맑은 그들의 웃음, 그리고 또 그 천진난만함을 잃어버린 불쌍한 어른들에 대해서도.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우리나라 속담이다. 요즘도 이런 속담이 자주 쓰이는지 모르겠으나, 웃는 얼굴이나 미소는 참 좋다. 혹시 지금도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70년대쯤으로 기억되는데, 한 때 우리나라에서 스마일 운동을 전개했던 적이 있다. 새마을 운동처럼 그것도 하나의 운동(!)으로서 전개되었다. 예전에 나는 가수 한명숙, 문주란 그리고 박재란, 김상희 누나들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는데, 그 분들 중에서 어느 분이 한 번 나왔다 하면, '노란셔츠 입은 사나이'를 아주 시원스럽고도 멋지게 불렀다.

그 분이 한명숙 누나 였던가? 아무튼, 그 때문에 한 때, 나는 노란 셔츠를 즐겨 입고 다녔는데, 이른 봄 노란 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해주는 개나리꽃처럼 밝은 노란색 셔츠 왼쪽 가슴에다가 양철판을 이용하여 동그랗게 얼굴 형상을 본 뜬 위에다가 미소를 머금은 제법 큼지막하고 아주 단순한 스마일 캐릭터/엠블램을 달고 다녔다. 비교적 수줍음을 잘 타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만큼은 보란 듯이 달고 다녔던 기억이 지금 되살아난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긴장하고 피곤하게 사는 사람들도 어린아이를 좋아하고, 또 그들이 즐겁게 떠들어 대며 웃는 모습을 볼 때, 잠시나마 각박한 세상사의 시름을 잊을 수 있다. 그들도 한 때는 어린이였다. 나는 어린이의 웃음과 미소에 분명히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즐거운 순간, 그 즐거움을 아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유쾌하게 웃음소리에 담아내는 어린이의 얼굴. 수줍을 때는 그 수줍음을 수줍은 낯에 그대로 드러내며, 멋쩍어 하는 그 얼굴. 어린아이의 표정은 꾸밈이 없다. 그 꾸밈없음이 바로 그들의 매력이다. 이런 꾸밈없는 얼굴과 웃음 띤 표정은 가끔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에서도 피어난다. 그들의 웃음과 미소에는 그 어떤 적의나 음모, 꾸밈이 없다. 그들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른 어른들은 웃을 줄도 미소 지을 줄도 모르는가? 아니다. 그들도 때로는 어린이들처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잘 웃고 멋진 미소를 지을 줄 안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이나 미소가 마치 배우들의 그것처럼 그럴듯해 보이지만, 어떤 경우에 그 웃음이나 미소의 뒷면에는 그 어떤 전략이나 음모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서로 반가운 듯이 손을 잡고 흔들어 대며(악수), 기자들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는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격하는가?

경쟁하는 사회에 편입된 이들에게 얼굴/표정 관리는 아주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그 관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이른바 사회적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성장해 가면서 기성세대/어른들로부터 학습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꾸민 웃음/미소이다. 곧 상대를 압도하기 위하여 거만한 얼굴표정에서 흘러나오는 웃음과 미소, 상대의 선처를 기대하며 자신을 낮추는 비굴해보이기까지 하는, 그래도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취하는 그런 억지로 꾸민 웃음이나 미소/얼굴표정 말이다. 그 때의 그 꾸밈은 참으로 절실한 것일 게다. 그 분들께 힐난보다는 동정이 간다. 이 경쟁사회에서 살아야 하니까.

빅터는 지금 칠십 줄에 들어선 분인데, 그가 오늘 아침에 말한다, 자신은 어린아이들과 노는 것이 좋다고.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없을 때는 그들이 노는 모습을 즐겨 지켜본단다. 얼마 전에 아이들이 잔디 위에서 야구놀이를 즐겁게 하는데, 아이들은 그 놀이 자체를 무척 즐기는 것 같더란다. 그런데, 그 뒤에서 아이들의 몇몇 부모가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아이들의 놀이 자체보다는 승부에 더 관심을 갖더란다. 그런 그들은 아이들이 더 경쟁적이 되고, 그래서 자기 아이가 속한 팀이 그 경기 - 이 때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쟁이 되는 것 - 에서 이기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다. 어제까지는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동무들과 함께 노는 자체를 즐기며, 해맑은 웃음을 짓던 어린이들이 그들의 부모, 기성세대들이 주조한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해 나가도록 요청받는다. 물론 어린이들도 짓궂은 웃음을 짓기도 하고, 또 그들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어 다른 친구들을 골려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어린이들이 비록 경쟁하는 사회의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어린이다움을 잃어버리도록 하는 도전을 받고, 부득이 경쟁하는 이 사회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 요구에 길들여져 갈수밖에 없을지라도 어린시절의 천진난만함과 그 꾸밈없는 웃음을 그들의 가슴에서 마저, 지워버리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경쟁하는 사회에 사는 이들은 무엇을 꿈꾸며 살까. 그들도 실은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하늘나라 - 이상 국가는 더 이상 경쟁할 필요 없이 함께 뒹굴며 순진무구함에서 우러나오는 해맑은 얼굴을 서로 마주보며 사는 것이다, 마주보며 웃는 두 얼굴 사이에 아무런 너울이 없는. 그 곳에 참 평화가 있지 않을까.

(2002/08/14 뉴욕 아시닝에서 양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