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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8) 글쓴이 : KEEC   2022-07-25 18:02
노트르담 드 파리(8)

영화와 에니어그램
노트르담 드 파리(8)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Dame de Paris
- 머리와 가슴과 장, 믿음, 사랑, 희망 -

Main Themes: 머리와 가슴과 장, 믿음, 사랑, 희망


- 사랑, 안젤름 그륀 -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랑을 통해 살아간다. 인간은 옛날부터 사랑하고 사랑 받기를 갈망해 왔다. 사랑을 통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슬퍼하며, 노여워하며 살아간다.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문학, 음악, 미술,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사랑의 신비를 말한다.
인간의 깊은 갈망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의 시작은 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서 시작된다. 아기는 조건 없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야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사랑이 없으면 아기는 비뚤어진다. 사랑의 결핍은 부모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처이다. 따라서 사랑은 인간이 무성하게 자라 활짝 꽃을 피울 수 있는 옥토이다. 부모가 먼저 자녀들을 사랑한다. 물론 자녀도 자기 방식대로 사랑한다. 부모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그것을 돌려준다. 성인成人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평생동안 갈망해 온 어머니의 사랑을 한번이라도 경험하려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돈다(그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긍정하고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일 뿐 아니라, 호의적이고 사랑스런 눈으로 나 자신을 보고 나에게 호감을 갖는 것이며, 나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몸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길을 가고 싶어하지만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기 몸에 대한 증오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몸 나’를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는 내 몸에서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내 몸을 아름답게 보며, 좋은 시선으로 내 몸을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는 내 몸을 잘 돌보고, 부드럽게 만지며, 내 몸을 사랑스럽게 느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아가 진정한 자기(Self), 나만의 고유의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그륀).

카를 프리링스도로프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였을 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오직 조건부로만 알아듣게 되는지 묘사한 것이 있다. 그들은 착하고, 말 잘 듣고, 말썽부리지 않고, 성공적이고, 잘 적응한다는 조건하에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오직 조건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끼는 아이는 이 조건을 채우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생존의 전략을 개발한다. 그는 오직 받아들이기 위해서 갈수록 더 많은 노역을 기울인다. 갈수록 자신을 조건에 적응시킨다. 아이는 모든 경우에 사랑받기 위해서 절대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삶이 아니라 생존일 뿐이라고 프리링스도로프는 말한다. 우리는 조건없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에만 진정으로 살 수 있다.

우리의 삶속에서 가장 큰 상처는 사랑의 결핍이었음을 끊임없이 경험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조건없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어린 아이였을 때, 그들은 엄마 품에 포근히 안기기를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일 때문에 너무 바뻐서 이 포근한 안정감을 줄 수 없으면,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엄마에게 짐이 될까 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 안에서 느끼는 사랑도 억제한다. 왜냐하면 사랑에 대한 이 갈망을 감지하면서도 그것을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눈길과 관심, 칭찬과 인정을 무척 갈망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일만 생각했으면 그들은 아버지 사랑에 대한 갈망을 채우지 못한다. 그래서 대부분 채우지도 못하면서 평생동안 그 사랑을 찾아다닌다. 이러한 과정 중 어린아이였을 때 받았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간다. 사랑의 결핍이 우리의 가장 깊은 상처라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 역시 사랑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희망한다.
사랑이 없으면-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 우리의 노력, 교육, 봉사 모든 것이.....
사랑은 가슴을 넓게 만든다. 넓은 가슴은 모든 것을 향해 개방되어 있다. 더 이상 분노, 질투, 과정과 같이 부정적인 자질 속에 우리 가슴을 좁히지 않고 가슴을 넓혀준다. 넓은 가슴에는 모든 것을 위한 자리가 있다. 또한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면 새로운 행동으로 나타난다. 시기, 허세, 교만, 무례, 자기의 유익, 분통, 원한, 불의 속에 있지 않는다. 즉 사랑은  인간이 성취해야 하는 업적이 아니라 체험의 표현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희망하고 모든 것을 견딥니다.(1 고린 13.7) ‘덮어주다’라는 그리스어는 ‘지붕, 덮개’에서 유래한다. 사랑은 그러니까 폭풍우와 비가 우리의 내적인 집으로 들이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보호막이다. 우리가 사랑에 차 있으면 우리 안에 있는 파괴적인 기분은 힘을 못 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아늑함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보호막이 되어 줄 수 있다. 견디라는 그리스어는 본래 ‘그 밑에 머물다’, ‘지탱하다’를 뜻한다, 사랑은 우리 인간존재라는 집 전체를 지탱하는 기둥이고, 우리의 공동가옥이 불신과 시기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기둥이다. 따라서 사랑은 그 자체로 보호하고 지탱하는 그 무엇이다.

사랑은 동시에 믿음과 희망의 완성이다. 믿음과 사랑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은 한편으로 인간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에 의해 지속된다. 또한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사랑은 믿음이 흘러나오는 근원이다. 사랑에 차 있는 사람에게는 믿음을 종용할 필요가 없다. 그는 그냥 믿는다(나를, 가족을, 사회를....) 믿는 것 외에 그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사랑은 희망으로 가득차있다. 사랑을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 사람 안의 善이 이끌어 나옴을 희망한다. 모든 참된 희망은 궁극적으로 진정한 근원인 사랑을 필요로 한다. 사랑이 없으면 희망은 쉽게 과욕이나 단순한 낙관주의가 된다. 사랑은 우리가 스스로를 불신하는 중에서도 또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해여 실망스런 경험을 할 때에도 살랑은 그 사람 안에서도 기적을 일으키고 변모시킬 수 있다는 희망하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